지뢰꽃 길
평화로 가는 길 (40)
김승국(평화 활동가/ 평화마을 화내천 대표)
철원 노동당사의 한 켠에 ‘지뢰꽃 시비’가 서 있다.(아래 사진)
정춘근 시인이 지은 「지뢰꽃」이라는 시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을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 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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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지뢰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는 곳.
그 곳의 이름은 지뢰꽃 길.
지뢰꽃이 피어 길을 내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지뢰꽃을 노래한다.
나는 지난 8월 28일에 소이산의 지뢰꽃 길을 걸으며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지뢰꽃들’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꽃 이름을 붙일 것이 없어서 ‘지뢰’를 선택했을까? 지뢰의 惡名과 꽃의 착한 이름[善名]이 잘 어울리는 지뢰꽃. 상호 모순 속에서 상생하는 묘한 꽃[妙花].
지뢰와 공존하는 妙花들이 지뢰꽃 길의 철조망에 걸려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흔을 부여안고 땅속에서 신음하는 지뢰들의 머리 위에 지뢰꽃의 꽃비[花雨]가 내린다.
음험한 지뢰가 화려한 冠을 쓰고 있는 지뢰꽃들이 반기는 길. 소이산의 지뢰꽃 길을 걸으며 울며 웃었다. 철조망에 꽂혀 있는 지뢰꽃의 화사함을 보고 웃고, 지뢰 경고 표지판을 보고 울었다.
웃고 울며 지뢰꽃 길을 마냥 걸었다. 병사들 몸에서도 나는 지뢰꽃 냄새가 나에게도 났다. 지뢰꽃 향기에 취한 채 지뢰꽃 길 위에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통일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