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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8 역사문화탐방이야기(25) - 당쟁이 극심하던 시대를 살아간 정조를 찾아서

 

아버지 영조는 할아버지 숙종의 서장자(차남)로 적통인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영조는 잠재적인 왕위 계승이 가능한 인물이었지만, 수많은 위기속에서 경종 사후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영조는 자신의 아버지 숙종이 강력한 왕권으로 조선을 다스리는 것을 목격했고 권력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자식에게까지 냉담했던 기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 권력을 유지한 재위기간도 숙종의 49년 10개월보다 긴  51년 7개월에 이릅니다.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가 죽고 나서 그 기간만큼 왕위를 대신 이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숙종의 통치기간에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권력은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수 없이 보고 체득한 경험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자신의 손자를 사랑했겠지만, 살아생전 왕권을 넘겨주지 못하고 대리청정 2년을 제외하고 나면 실질적인 왕위계승은 영조가 1776년 승하하고 나서야 가능했습니다. 이때 정조의 나이가 24살이었으니 조선의 최고 권력은 한 사람이 반세기를 다스리고 나서야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수원은 정조가 정약용으로 하여금 설계를 맡겨 완공하게 했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화성이 있는 곳입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에 수원으로 발길을 향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여러번 수원에 가서 화성과 정조를 만나고 싶었지만, 쉽게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날 우연히 약속된 일이 변경되어 시간이 비어 버렸기 때문에 그곳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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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은 조선 제 22대 왕인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49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유언대로 같은 해 11월 6일 아버지의 능인 현륭원(훗날 융릉)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되었다. 21년 후 순조 21년 1821년 3월 9일 효의왕후가 승하하였다. 효의왕후를 건릉 부근에 안장하려다 김조순의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주장으로 길지를 찾아 순조 21년 1821년 정조의 릉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해서 오늘날의 건릉이 되었다.

 

출처_ 위키피디아 

 

 

정조선황제(재세 : 1752년 음력 9월 22일 ~ 1800년 음력 6월 27일, 재위 : 1776년 음력 3월 10일 ~ 1800년 음력 6월 27일)는 추존 장조와 헌경의황후 홍씨의 둘째 아들로 1752년(영조 28)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1759년(영조 35)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762년(영조 38)에 아버지 장조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을 겪었다. 1762년에 영조는 정조에게 왕위 계승의 명분을 주기 위해 일찍 세상을 뜬 첫째 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게 하였다. 1775년(영조 51) 부터는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으며, 이듬해인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먼저 아버지 장조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노력하였으며,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를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 설치, 신해통공(금난전권 폐지 등) 실시, 신분의 제약 없이 능력과 학식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임진자 등을 새로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을 기하고, 『증보동국문헌비고』등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이론이 중시되는 학문에 치우치지 않고, 실학을 발전시켰으며,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기를 가져왔다. 가난한 백성의 구제를 위해 자휼전칙을 공포하고, 제도 개편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후 1800년(정조 24)에 창경궁 영춘헌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순조는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정조선황제로 추존되었다.

 

출처_ 문화재청

 

 

영조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정조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고, 둘 사이의 불편했던 관계로 첨예한 정치적 갈등과정에서 정조가 독살되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정조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존재하듯이, 한국정치사에서 고노무현 대통령은 기존 권력을 가진 세력과의 끊임없는 견제와 갈등이 반복되었고 퇴임후 검찰의 칼날에 부엉이 바위에서 목숨을 다했는데 그 죽음 과정에 대해 타살 의혹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비록 자살을 통해 죽음에 이르렀다 해도 MB정부의 보복성 검찰조사와 언론이 이 조사과정을 확대 재생산하여 보도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타살은 어떤 인물에 대해서 무자비한 고립감을 만들어 가게 되면서 만들어 지는 결과인데 최근 마광수 교수(전 연세대 교수)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과 이해관계 집단의 권력에 목숨을 거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고,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 얻은 권력은 집행력이 있기에 치열하게 지지기반을 확장케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한번 얻은 권력이 어떤 칼을 사용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 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 또는 그 사회는 너무도 상이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국민들이 원하는데로 최고권력을 투표로 바꾸었다 해서 모든 상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지금 성주에서 사드 배치문제로 수십명이 다치고 몇명은 연행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그 진압과정에서 보여 준 경찰의 폭력적 행위와 성주시민과 함께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싸움은 공권력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는 이 사드배치강행과 진압과정에서 보여준 비민주적 결과로 스스로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자충수를 두었습니다.

 

국민들은 현정부가 사드배치에 대해 박근혜정부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낮은 자세의 외교를 벗어나기를 바랬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의 문대통령은 그걸 포기한 듯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레드라인을 계속 넘어서는 발언으로 일부 지지층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지 하면서  이해해 보려해도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전 정부가 취해왔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해 보입니다. 최근 외교관계를 돌아보면 말입니다.

 

이는 대통령 한 사람이 만든 결과가 아닐 것입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최고권력자와 그 주변의 공을 크게 세운 인물과의 관계속에서 수 없이 많은 정책기조가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재를 잘 찾아내어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현정부에도 그런 구도가 이미 펼쳐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하고 쉽사리 체질 변화를 꽤 하지 않는 것은 내부의 강력한 견제력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외교관계로 인한 역학관계든지 말입니다.

 

 

정조는 주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를 대 표하는 인물이 홍국영입니다.

 

 

이산이 왕이 되기까지 홍국영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홍국영이 정조에게 누가 되는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을 때 정조는 고민했을 것입니다. 가장 믿고 사랑하는 부위를 도려내야하는 아픈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자 결국 홍국영이 4년동안 누렸던 권력을 내려놓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지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처음 무슨 일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순수한 마음도 재물과 권력이 증가하게 되면 변하는 습성을 보여주곤 합니다. 홍국영도 그랬습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정조가 원하던 조선의 모습과 달리 권력을 다른 형태로 장악해 보려는 홍국영의 욕심은 결국 자신을 추락시키게 한 것입니다.

 

 

정조는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였고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실학을 장려하였습니다. 남양주에 실학박물관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 정약용의 생가도 있고 주변 가까운 곳에 마재성지도 있는 곳입니다.

 

 

믿고 정치적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변해가고 있다면 당시 정조의 통치하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홍국영이 그리 낙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보더라도 객관적 잘못을 저지른 것은 자신이 걸어간 개인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남을 것입니다. 

 

 

가을이 다가옵니다.

 

낮동안의 따가운 햇살은 가을이 오는 것을 막고 싶어하지만 결국 단풍잎 물들이고 산천을 수 놓는 계절은 어김없이 되돌아오네요. 인생은 계절의 반복이 이어지면서 삶이 익어가는 것...

 

그래서 오늘도 스치는 작은 인연의 끈이라도 그냥 보내지 않고 마음과 시선을 머물게 해 봅니다.

 

 

어딘가에는 나의 흔적이 나의 발걸음이 방향을 찾아가는 길이 되어 남는 곳도 있을테니까요. 방문하고 싶던 수원을 다녀왔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머물러서인지 정조와의 만남이 뜨거운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종일 그곳에 머물러 그 시절 마음을 다해 학문에 힘쓰고 나라의 기틀을 세우려하던 젊은 그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물론 수원 화성도 거닐면서...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입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 전 묵혀져 있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일을 생각해봅니다. 손을 뻗어 붙잡기 전 그날이 스스로 다가오기를 기다리며...지난 역사를 살포시 마음으로 안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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