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28 역사문화탐방이야기(22) - 원주변씨 뿌리인 변안렬선생 묘소를 찾아서..(남양주시 진건읍)

by 문화촌 posted May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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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8 역사문화탐방이야기(22) - 원주변씨 뿌리인 변안렬선생 묘소를 찾아서..(남양주시 진건읍)

 

문촌 장익수(메인즈)

 

변안렬 장군...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고려시대의 인물입니다. 탐방을 통해 그분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밴친이신 변안렬 선생의 21대손 변연희님의 제안으로 가게 되었는데 변안렬 장군의 업적과 공로를 살펴보며 그분이 남양주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분이었습니다. 


역사속 인물의 출생과 죽음

그런 인물들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남양주는 축복받은 땅입니다. 역사문화 인프라와 콘텐츠 구축으로 남양주지역 관광자원화를 실현해 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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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부원군 변안렬(原川府院君 邊安烈, 변안열, 1334년 4월 ~ 1390년 1월 16일)은 중국 원나라 심양(瀋陽) 출신으로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 무신(武臣), 시인(詩人)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자(字)는 충가(忠可)이며 호(號)는 대은(大隱)이다. 고려 공민왕이 원나라 심양에 있을 때 공민왕을 따라 고려로 귀화하였다. 조부는 고려 판삼사사(高麗 判三司事)로 추증된 변량(邉諒)이다. 1351년 진사시에 장원 급제했다.

 

장군 이성계(李成桂), 장군 최영(崔瑩) 등과 함께 참전하여 왜구를 물리쳤으며 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고려 말기의 무신(武臣)이었다. 김저(金佇)의 분명치 않은 자백에 의한 누명으로 억울하게 순절하였다. 조선 태조(이성계)는 충신 대은 변안렬을 조선 개국 이등공신에 책록을 추증하는 교지를 내리었다.

출처_ 위키피디아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보통은 정몽주를 떠올리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공이 있는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하여가를 보냅니다. 

 


하여가

 

이런들 또 어떠하며 저런들 또 어떠하리
성황당의 뒷담이 무너진들 또 어떠하리
우리들도 이 같이 하여 죽지 않은들 또 어떠랴
- (해동악부 海東樂府), (포은집 圃隱集)

 

여차역여하 (如此亦如何), 여피역여하 (如彼亦如何)
성황당후원 (城隍堂後垣), 퇴락역하여 (頹落亦何如)
오배약차위 (吾輩若此爲), 불사역하여 (不死亦何如)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이방원에게 화답을 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동시대 인물로 위화도회군으로 조선 개국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내던 이성계와  함께 하던 변안렬 장군 역시 정몽주와 비슷하게 하여가에 대한 답변을 불굴가로 대신합니다. 

 


불굴가(不屈歌)


가슴에 구멍을 둥그렇게 뚫고 왼새끼를 길게 느슨느슨 꼬아
그 구멍에 그 새끼 넣어 두 놈이 마주 잡고 흘근흘근 드나들 제, 
그것은 아무쪼록 견딜 수 있겠지만
아마도 임 거부하고 사라 하면, 그것은 못하겠노라.

 


당시 이성계가 조선의 하늘을 열기 위해서는 변안렬 장군은 강력한 라이벌이자 넘어야 할 산이었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그를 새로운 나라의 동반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고려를 향한 충절을 간직한 변안렬 선생은 우왕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결국 순절하게 됩니다. 

 


변안렬 선생이 신진사대부 이성계 일파에게 누명으로 죽음을 맞게 된 것은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모진 고통이 수반되는 국문과정에서 "김저"는 우왕복위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변안렬을 거론 해 버립니다. 

 


보통 우리는 사실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증언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말은 일파 만파 부풀려져 최종적으로 당사자에게 돌아 올 때는 커다란 생채기를 남기게 됩니다. 누군가를 처벌할 경우에 최소한 항변할 기회와 합리적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들리는 소문이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시절 저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통 사람에 대한 소문이 주는 영향력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번지게 되고 그에 대한 믿음 또한 현재 같이 하고 있는 분들과의 친밀도가 중요한 판단의 척도로 작용하게 됩니다. 결국 제대로 사리분별을 못하게 하는 것이 사람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좀더 크게 작용하는 것중의 하나가 권력의 힘입니다. 

 

무당한 일에 대해서 저항은 권력과 재력 그리고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생각합니다. 그런 저항은 민중의 저항, 시민의 저항,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필요에 의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변안렬 선생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사람이 있거나, 권력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 살아 움직이는 고려였다면 충직한 사람들로 인해 조선왕조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기존의 인연을 정리해야 하나 봅니다. 

 


새롭다는 것은 기존에 익숙했던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되어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
편견
안정
단정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지역을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힘은 신구세력의 균형적 조화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내재 되어 있는 다양한 가치관이 있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사람을 살리고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일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지역봉사, 재능기부, 환경정화, 교육, 문화 활동 등이 그런 것인데 뜻을 모아 함께 하다보면 지금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려면 사의재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사의재란 4가지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思)은 마땅히 맑아야 하며
용모(容)는 마땅히 엄숙하고
언어(言)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며
동작(行)은 마땅히 무겁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려의 충신 변안렬 선생으로 하여금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에 충직하고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무엇인가에 함께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오늘이라는 시간을 맞이하려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충성된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하루 하루 신뢰를 쌓는 나날은 늘 새로운 각오로 반복되어져야 하겠습니다.

 


누워있는 묘소만 바라보아도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불꽃이기에 조선왕릉의 규모에 비견되는 변안렬 선생의 묘소 앞에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표해봅니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봄에 만나는 싱그러운 초록 빛깔에 취해 보는 날
그리움의 언덕에 잠시 몸과 마음을 의탁해 봅니다.

 


모두 모두
쉼표가 있고
느낌표가 있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공감이 살아 있는 [사람숲 시민문화촌]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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