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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6 역사문화탐방이야기(17) - 청록파시인 조지훈 묘소를 찾아서(남양주시 화도읍)

 

문촌 장익수(메인즈)

 

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치여서 때로는 경제적 빈곤으로 때로는 마음 둘 곳 없어 헤메일 때 그렇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날이 찾아오곤 합니다. 반갑지는 않지요. 그럴 때면 화도도서관 시인학교에서 권용익 시인께 배웠던 시 한수 짓는 방법을 더듬어 봅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 선생 묘를 다녀 와 시 한수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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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장익수

그 다리 건널 때 
심장이 고동친다

고즈넉한 하늘아래
둘은 언제 다시 만날까

마음속 맺힌 흔적
말없이 다가오는 날

겹겹이 쌓인 추억
살포시 꺼내어 보는 아침

이슬먹은 너를 향해
수줍게 사랑 고백한다

 

* 조지훈 시인 묘소 앞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떠오른 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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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중학 과정을 마치고서 동국대학교[1] 에 입학하여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39년 《문장》지에 〈고풍의상〉과 〈승무〉[2] 를 추천받아 문단에 등장하였다. 광복 후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와 동국대학교 강사,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61년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시인 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듬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장에 취임하면서 민족문화 개발에 주력하였다.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명시를 많이 남긴 조지훈의 시는 주로 자연, 무속, 선을 소재로 한 민족다운 색채가 짙고 불교 세계를 향한 관심은 종교의식을 일깨워 작품에 반영되었다. 박목월과 박두진을 비롯한 다른 청록파 시인이 후에 시 세계를 근본으로 변혁했는데 조지훈은 초기 자연과 친화한 시 세계를 꽤 많이 유지하였다. 1956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로도 활발히 문학 활동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68년 5월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 고혈압과 기관지확장증의 합병증으로 5월 17일 끝내 타계했다.

 

시집으로 《청록집》과 《조지훈 시선》이 있고 수필집 《창에 기대어》, 논문집 《한국 민족운동사》 이 있다.

 

출처_ 위키피디아

 

 


조지훈 시인의 승무를 다시 천천히 음미해 봅니다.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어찌 언어가 이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천천히 시어 하나 하나를 마음속으로 가져가 봅니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도 사람마다 다른 색깔을 내듯이, 언어사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납니다. 

 

사람은 어느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갖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서 있지만 내일은 다른 곳에 서 있기도 합니다. 어떤 그룹의 매력과 힘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보다 더 크고 우세하면 그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남아 있어 홀로 된 사람은 떠나가는 사람들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을 20여년 넘게 해오다 보니 감각이 생기더군요. 사람들의 흐름과 성향이 한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한결같은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상상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만남을 통해 허물어 지기도 하고, 개인의 이익과 관계에 전혀 연관되지 않았을 때는 버튼 하나로 인연을 끊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려할 때 활성화된 곳에 속해 있을 때가 가장 즐겁기도 합니다. 반응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올린 글이나 댓글에 무반응의 공간은 그야말로 메아리 없는 벽과 같습니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않는 말처럼 내 영역에서 누군가 해당행위를 할 경우 그 사람은 퇴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내 영역에 있던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그 영역을 같이 하게 된 것 뿐이니까요. 그래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영역에도 속해 있고, 다른 사람의 영역에도 속해 있기 때문에 타인이 어떤 처신을 하든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을 놓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왜 생길까요? 


나보다 남을 한 수 아래로 여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것만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잘 되는 것이 좋습니다. 

 


경춘선 마석역에서 내려 도보로 15분이면 오를 수 있는 조지훈 선생 묘소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이곳 저곳 산책하다 보니 세 가지 길이 발견되었습니다.

마석역 2번출구로 나와서 바로 산을 향해 오르는 길
심석고등학교 못가서 이정표를 보고 마석교회 쪽으로 가는 길
심석고에 주차를 시키고 뒷편으로 가는 길이 있더군요. 

 


조지훈 시인이 남양주 땅에 묻히게 되었을 때 그와 호흡할 수 있는 기념관이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음을 담아 시를 공부할 수 있는 탐방길로 만들지 않은 것도 속상합니다. 

 


마석역부터 조지훈 선생의 묘까지 조지훈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면 꽃을 피우는 진달래꽃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고 마음으로 품어주는 시인의 마음을 닮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달픈 목숨을 이어갔다고 말하는 날보다 잘 살았다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날이 많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산속에서 만난 조지훈 시인
이제는 그와 함께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습니다. 
C.S루이스의 말로 대신합니다. 

 


"물론 악이 어느 선을 넘을 경우는 아무리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라고 해도 반드시 맞서야 합니다. 모두들 냉소와 잔인함을 즐기고 있지만 나 혼자라도 분명한 태도로 항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잘난 척하는 위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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