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1)

by 평화마을 posted Jul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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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1)

 

 

김승국(평화 연구활동가/ 철학박사)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있음을 알리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평화의 감수성을 높인다. ‘이야기 속의 평화를 내오기 위하여 이 연재물을 싣는다. (필자 주)

 

 

김승국(평화 연구활동가/ 철학박사)

 

 

오늘의 이야기는, 주로 金子 勇(가네꼬 이사무)가 지은 社會資本主義” (京都, ミネルヴァ書房, 2023)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 “社會資本主義” 28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입한 뒤의) 러시아 정치의 변화와 그 정책 결정이 국민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소련 시대의 코뮤니즘으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이 있다.”고 언급했다.

 

 

2. “社會資本主義” 272~274:

 

 

최근 斎藤幸平(사이토 고헤이) 등이 脫成長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을 말하며 마치 자본주의를 타파할 듯한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개혁론을 포함한) 자본주의 영속론(永續論)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이 맞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脫成長이라는 용어가 정립된 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脫成長은 프랑스어의 ‘décroissance’를 일본어로 번역한 개념어이다. ‘croissance’성장을 뜻하니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는데, ‘dé’의 뜻이 모호해서 단순하게 로 번역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의 발단을 좀 더 깊숙하게 살펴본다;

Latouche, S.(“QUE SAIS-JE”문고 No. 4134)의 저서로 펴낸 “La décroissance”(일본의 학자인 中野佳裕) “脫成長으로 번역함으로써 문제를 일으켰다. ‘dé’에는 감소쇠퇴축소의 뜻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을 갖다 붙였다. 이렇게 을 붙이니 자본주의라는 혹성을 탈출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脫經濟至上主義(탈경제지상주의)’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La décroissance”減成長(성장 신화의 감속)’으로 번역해야 정확할 듯한데, 脫成長을 이야기하니 마치 자본주의 탈출처럼 여겨지는 연막이 형성되었다.

이 연막을 거두어내기 위하여 斎藤幸平(사이토 고헤이) 등의 脫成長론이 자본주의 영속론의 연장선상에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décroissance와 유사한 degrowth를 언급하는 칼리스(Giorgos Kallis) 등이 지은 “The Case for Degrowth” (2020)는 경제성장 전체를 부정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탈성장론은, 경제성장 추구를 멈추게 하여 생활사회의 관점을 well-being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생산유통판매의료자원 등 well-being을 지탱할 경제적 기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경제성장을 멈추게 하여 GDP를 계속 떨어지게 하면 well-being을 실현할 수 없다. 한편 탈성장을 뜻하는 스페인어 ‘buen vivir’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세 가지 개념의 어느 쪽을 사용하더라도 개념의 실현 수단을 분석준별함으로써 구체적인 목적을 추구하며, 개념의 실현에 기여할 tool을 개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décroissanceDegrowth도 그 본래의 뜻과 너무 동떨어지게 쓰이므로, 번역 또한 수정되어야 한다.

 

 

3. 社會資本主義 241285~291305:

 

 

재생 에너지(특히 육상해상 풍력발전) 회의론을 제시하며 집단최면에 걸린 재생 에너지 붐을 비판한다. 특히 生命元素(생명원소)인 탄소나 식물의 광합성에 불가결한 이산화탄소를 공연히 적대시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탄소를 생명원소로 간주하는 생명사상이 돋보인다고 평가해도 무방할까?

 

 

그리고 위의 책 284쪽에서 저자는 인체의 14%를 구성하고 식물의 광합성에 불가결한 이산화탄소를 나쁜 놈(惡者)으로 다루는 풍조에 동의할 수 없다. 공연히 이산화탄소 지구온난화의 공포를 부추기고 재생 에너지인 태양광발전이나 육상해상풍력 발전만을 우선하는 풍조에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