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렬의 역사인식 결여
김승국(평화 연구•활동가)
외교참사를 거듭하는 윤석렬 대통령(이하 “윤석렬”)이 더 이상 외국에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일부 국민의 여망을 거슬린채, 이번에도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회의에 장외 국가의 대표로 참석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 강행 등에서 보여준 역사인식의 결여를 그대로 드러냈다. 역사인식의 결여를 드러낸 주요 장면은, 히로시마 공원 안에 있는 ‘한인 피폭자 위령비(민단 중심의 추모비: 총련 계통의 인사들이 세운 추모비는 멀지 않은 곳에 있음)’를 기시다 일본 수상과 함께 방문한 일이다.
전범국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하여 군사대국 일본을 향하여 질주하는 기시다 일본 수상을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받은 조선인의 피폭 위령비 앞에) 세운 일 자체가 잘못이다. 기시다는 아베의 군국주의 노선을 답습하며 제2의 대동아 전쟁을 통한 한반도 재진입을 노리는 역사의 적인데, 그런 자를 (대동아 전쟁이 불러온 히로시마 핵무기 투하의 희생자인) 우리 선조들 앞에 서게 한 기획 자체에서 역사인식의 결여가 드러난다.
기시다는 이번의 G7 회의에서 일본이 2차 대전의 피해국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회담 장소로 선정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가해자이지 않고 전쟁의 피해자이었음을 증명하는 전시물로 꽉 차있는)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에 G7 회의 참가국들의 지도자들을 불러모아, ‘피해자 코스프레이’를 열심히 했다.
기시다는, 이번 G7 회의를 통하여 일본이 과거에 침략국으로서 역사의 가해자이었음을 국제적으로 망각하게 하는 조작을 했으며, 이 조작극의 선봉에 윤석렬이 또 한번 서게 되었고, 그 현장이 ‘한인 피폭자 위령비’이다. 피해자 코스프레이를 주도하는 기시다는 ‘가짜 피해자’ 노릇을 했다. 진짜 피해국인 한국의 윤석렬은 ‘피해국 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해야 하다’며 피해자에서 달아나면서, 일제의 조선지배를 가해하는 역사의 학살자 노릇을 하는 ‘역사의 기만극’이 벌어졌다. 기시다는 역사의 피해자가 되고, 윤석렬은 역사의 가해자가 되는 역전극이 ‘한인 피폭자 위령비’ 앞에서 펼쳐졌다.
윤석렬이 5월 19일 원폭 피해동포를 만나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며 사과했는데, 이러한 사과를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도 하면서 '제3자 변제' 방법을 철회해야 한다.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의해 강제징용된 피해자 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등으로 강제징용된 모든 피해자들 앞에서 석고대죄해야 한다.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된 분 들 중에서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일한 분들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히로시마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강제로 끌려 와서 히로시마 군수산업 공장 등에서 죽도록 일했다.
히로시마는 메이지 시대부터 군사적 전략지로, 일본군의 제1본영이 있었고, 메이지 일본왕이 히로시마의 본영에 머물며 청일전쟁을 진두지휘했다. 청일전쟁 이후의 한반도와 중국의 일부를 점령하고, 남아시아로 진출하면서 군수물자를 대량생산하는 국방산업의 핵심 지역이 히로시마이었으며, 이러한 군사거점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제1번지가 된 것이다.
히로시마는 일본 군국주의의 본거지이었고, 이 본거지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노예로 군수공장 등에서 피를 토하며 강제노동 당하다가, 미국의 핵무기 세례를 받아 처참하게 사망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이외의 지역에서 강제징용 노동을 한 분들보다 이중•삼중으로 가혹한 죽음을 맞이한 조선인 피폭자들의 위령비에, (가혹한 죽음의 원흉인) 일본의 수상을 데리고 간 윤석렬의 역사인식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삼중으로 가혹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언급했는데, 히로시마 피폭 조선인들의 ‘강제노동+피폭’이 이중이고, “조센징”이라 불리며 일본인들로부터 민족차별을 당한 걸 합하면 ‘강제노동+피폭+민족차별’의 3중고가 된다. 예컨대, 1945년 8월 6일 미군기가 투하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의 시내에 떨어져 아비규환이 되어 서로 먼저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순간에도 일본인 피폭자들이 조선인 피폭자들을 향하여 “조센징”하면서 조선인들을 배제했다고 한다. 동일한 피폭자인데 일본인이 먼저 구제받고 조선인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일이 허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3중고를 겪은 히로시마 피폭자들의 넋이 깃든 위령비에, 삼중고의 원흉인 일본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기시다를 초대한 윤석렬의 역사인식 결여를 다시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친다.(2023.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