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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2 역사문화탐방이야기(37) - 세상을 향해 돈보다 사람이라 외친다. (최영장군 / 파주)

 

마음을 다스리는 것 중의 하나는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차지하고 싶은 영역이 많을수록 잠이 오지 않는 날도 많을 것이다. 세상사 많은 영역에서 다투는 이치는 비슷한 이유가 있다. 자리싸움, 돈 싸움, 세력 싸움, 그리고 명예싸움이 그것이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최영장군묘소에 왔다. 

 

가을은 마음속에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그리고 웬지 고정화되어 있는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마음을 옮기는 시기라는 신호를 보낸다. 가을 낙옆이 떨어져 쌓인 계단을 밟으며 그 소리에 취하고 익어가는 가을에 화답해 본다. 

 

최영 장군

 

최영(崔瑩, 1316년 ~ 1388년)은 고려 말기의 장군 겸 정치가이다. 본관은 동주(東州)이다. 아버지는 최원직(崔元直)이고, 어머니는 봉산 지씨(鳳山智氏)이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우왕의 왕비인 영비 최씨는 그의 서녀였다.

 

군관으로 출사하여 우달치에 임명된 뒤 관직은 육도 도순찰사, 양광, 전라도 왜적 체복사 등을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1374년에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했고, 1376년(우왕 2)에는 왜구의 침략 때, 육군을 이끌고 논산군 연산의 개태사(開泰寺)로 올라오는 왜구를 홍산(鴻山)에서 크게 무찔러 철원 부원군(鐵原府院君)에 봉작되었으며, 여러 번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고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인임 등을 멀리하였고 1388년 이인임, 염흥방을 제거하였다. 유교 사대부와 동맹을 맺은 이성계와 대립하다가 명나라가 서북면을 요구하자 요동정벌을 주장하여 요동정벌군 총사령관 겸 팔도도통사에 임명되었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반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우왕은 그의 서녀 영비 최씨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고, 이후 우왕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다. 평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 최원직의 유언을 받들어 평생 여색과 재물을 멀리하였다. 사위는 사공민(司空敏)이고, 손녀 사위는 조선 초기에 좌의정을 역임한 재상 맹사성이다.

 

출처_ 위키백과

 

평생 최영 장군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었다. 그래서 여색과 재물을 멀리하며 나라의 녹을 먹는 위치에 있었고 권력의 최고점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려 놓으며 살았다.

 

최영 장군은 당시 변안렬장군(원주변씨, 묘역위치 : 남양주시 진건읍)과 더불어 고려의 마지막 수호신으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정치적 집권세력과 가까이에 있었으며 고려 공민왕 시절 무소불위의 위치를 얻었다. 그런데 무신세력에 위기감을 느낀 공민왕은 신돈을 앞세워 최영을 비롯한 무장세력을 견제하게 하였다. 그 결과 최영은 신돈에 의해 삭탈관직 당한 후 유배를 당했다. 신돈의 실각 이후 공민왕은 자신이 조직한 자제위에 의해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우왕이 즉위했을 때는 이인임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최영은 당시 무장세력의 중심이 되어갔다. 

 

최영의 리더십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그는 한 번도 고려를 배신하거나 새로운 왕을 탄생시키는 데 관여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어떤면에서는 그가 이성계에 의해 제거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방향을 돌려야 하는데 앞에 자꾸 걸림돌이 생기면 그 걸림돌을 제거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당시 최영은 고려 민중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개국하려면 최영이라는 걸림돌을 치워야 하는 것이 이성계 세력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결국 최영은 제거되고 말았다. 

 

최영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원칙과 대의를 지키는 이들의 아이콘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원칙주의, 강직함은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 좀 더 정치력의 정점에 있을 때 조금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미지를 가졌다면, 조금만 소통의 이미지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그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최영 장군이 세운 전공들로 강력한 무장력과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던 위치에서 고려의 왕정 정치가 썩어가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넘쳐가고 있었던 시대에 그가 선택한 것은 왕과 고려에 대한 충성뿐이었다. 그 충직함이 독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이 아쉽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었지만, 동시에 부패하고 썩어가는 고려 정치에 대한 개혁을 조금도 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이다. 상황과 조건은 언제든 변한다. 

 

나라와 지방정치 권력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 직업으로 보면 4년 계약직이고 계약연장은 가능하다. 물론 계약 연장에 따르는 조건이 있다. 백성들을 위해 국민복지와 평안을 위해 올인하는 것이다. 국민들 머리 위에서 영원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처신하다 보면 4년 계약직으로 끝날 것이다. 그만큼 민심은 천심이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살아 온 궤적을 너무도 잘 안다. 

 

기자는 기자답게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문화예술인은 문화예술인답게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활동가답게 사회를 만들어 가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옆이 있다. 

 

낙옆은 바람에 휩쓸려 이리 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쌓이기도 한다. 

 

황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이다. 

사람숲이 돈다발보다 중요한데 자꾸 낙옆처럼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게 된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보장이 되지 않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세상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부동산 개발이익이나 부동산 투자, 또는 자본의 투자로 인해 얻는 수익보다 우선되어져야 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삶을 자본축적과 권력획득에 멍들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록 원칙주의자 최영은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은 간직하고 살아야겠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내 앞에 떨어져 있는 만원짜리를 어찌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여기란 말인가? 

 

돈이 주는 편안함과 유익함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인가? 

 

기본 소득이 보장되는 나라는 가능한가? 

 

끊임없이 사색하고 질문하게 하는 최영장군의 평생 살아간 삶의 자세에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해답이 있다. 22살이 되면서 소유에 대한 집착, 부유함, 편안함을 버리고 산지 30년...그렇게 살아감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행보도 그럴 것이다. 내것이라고 주장하기보다 함께 하고 같이 가는 가치관으로 오늘을 살아내려 한다. 

 

그것이 나의 남은 생을 살아가는 희망의 디딤돌이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것처럼

 

누군가의 프로필에서 본 문구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지혜로운 수행자가 처음 할 일은 감각을 지키고 만족할 줄 알고 계율에 따라 절제하고 맑고 부지런한 친구와 사귀는 일이다.

 

그리고 항상 친절하라

우정을 다하고 착한 일 하라

그러면 기쁨이 넘쳐

괴로움을 말끔히 없애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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