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1(1/27) 역사문화탐방이야기(36) - 도전과 용기 (원주 강원감영)
원주 감영을 다녀온다.
그동안 너무 많이 달렸나 보다.
사무실 구축, 커피바리스타 자격교육, 그리고 주5일 택배배송업, 주 2틀 휴무일을 포함하여 일주일을 쉬지 않고 달려와서인지 몸과 마음이 많이 굳어져 있었다.
그런 내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기 위해 쉬는 날 가능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었는데 잘 이루어 지지 않았다.
지난 2월 말부터 3월말까지 쿠팡을 휴직하고, 두물머리숲에 정착했다. 호평동 꽃피는 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 철거를 스스로 자처하며 휴직기간 대부분 노동력을 그곳에 쏟았다.
하나씩 하나씩 물건을 비우면서 생각해 본다. 남양주시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 무엇보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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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강원감영(原州 江原監營)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200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39호 원주강원감영지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7월 28일 원주 강원감영으로 변경되었다.
원주시에서 매년 10월에 강원감영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강원감영제 기간에 감영 내로 들어가 행사에 참여하려면 상평통보로 환전을 하여야만 기념품을 구입하거나, 먹을거리를 살 수 있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 버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2000년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원주목 관아의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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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은 왜 분신술을 썼을까?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꼭 한번은 분신술을 써서 수많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고 싶은 유혹이 많다. 사실 육체노동을 즐겨하는 내게 수 많은 일들이 몰려올 때가 있다. 성격적으로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알았어요라는 긍정적 대답으로 일을 맡지만, 절대 시간 부족으로 맡은 일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끝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평가가 붙어 다니곤 했다. 능력도 있고 머리도 스마트한 것 같은데 마무리가 않된다는...꼬리표다. 이제는 그런 꼬리표를 떼어야겠다.
강원감영이 위치한 원주는 한반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지방 관찰사(지금의 강원도지사)가 상주하는 곳이기도 하고, 강원의 중심지였다. 물론 지금은 도청이 춘천에 있지만, 원주는 한반도의 중심에 해당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만큼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지방 관찰사 즉, 지금의 시장 또는 도지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일보다는 백성을 향한 애정이다.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의 백성을 얼마나 배고프지 않게 만들 것인가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방관 최고의 자질은 듣는 귀를 갖는 것이다.
제 아무리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소유했다 해도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실패다. 세상의 모든 것은 소통능력에 따라 결과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현 남양주시의 모습은 소통의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의원,시도의원, 그리고 남양주시장 모두가 소통하려는 기본 자세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강원감영이 당시 강원의 정치역사문화를 주도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관찰사의 의지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애로사항을 듣고 실천하는 자,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자, 정부의 녹을 받는 사람으로서 누구나에게 친절한 자가 되려는 자세가 그것이다.
메인씨네마타워 8층
멀리 바라다보이는 이마트 그리고 아파트로 둘러쌓여 있는 사람숲 (가)남양주NGO센터는 남양주시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작은 불씨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 본다.
최근에 나를 따라다니는 마무리가 안된다는 꼬리표를 떼고 결과를 만들어 낸 것들이다.
- 꽃피는산골 철거 작업 (완료)
- 남양주NGO센터 입주 (진행중)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 제출한 프로젝트 선정 --> 남양주공익활동지원센터 조례 제정을 위해서만 프로젝트 기금이 사용되도록 협의가 완료되었고, (가)남양주NGO센터 설립에 대한 지원 조례와 간담회는 이 예산과 무관하게 별도의 독립된 형태(자비 또는 후원금)로 진행하려 한다. (완료)
- 두물머리숲 웹사이트 제작 ( http://www.2wforest.net ) (완료)
조금씩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을 내려한다.
그리고 지난 날 나를 따라다니던 일반적 인식 또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지키려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자인 그 분 앞에서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이다. 하루 하루 목숨을 다해 살아내다 보면 먼 훗날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행복했다며 눈물 흘릴 수 있는 날을 소망 해 본다.
그래서 나는 내일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 냈다 자축하는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