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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6 역사문화탐방이야기(28) - 청강 이제신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기리며

 

남양주 수동면 송천리를 그동안 많이 다니다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명달리...늘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화서 이항로의 기념관은 지난 번 고종황제의 증손녀 이홍 공주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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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 이항로(李恒老, 1792년~1868년)는 조선의 유학자이자 문신입니다.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경기도 포천 출신입니다. 

 

3세 때 《천자문》을 떼고, 6세 때 《십팔사략》을 배웠다고 합니다. 1840년 헌종 때 경사(經史)에 밝은 선비로 천거되어 휘경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 벽계에서 후진을 양성하였습니다. 1864년 고종 때 좌의정 조두순의 추천으로 장원서 별제·전라도 도사를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성리학에 밝았으며, 저서로 《화동역사 합편강목》 60권과 《벽계아언》 12권, 《주자대전 잡의집보》 등이 있습니다. 최익현에게 유교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

 

기념관에 들러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항로를 떠올렸던 2016년...퇴계이황에 이어 두번째 제가 공부를 더 해서 후진양성에 힘쓰고 싶게 만들었던 분입니다. 

 

명달리를 가려면 수입리를 거쳐가는데 1.4km 청강 이제신 기념관 표지판이 늘상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들렸던 곳...생각보다 기념관을 포함한 묘소의 규모가 컸습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짐은 결국 인연이라는 쇠사슬처럼 멋진 만남 , 즐거운 만남은 늘 우리가 꿈꾸는 이상을 향한 첫 걸음이 됩니다. 그렇게 발길을 머물게 했던 표지판 덕분에 수입리 주변 카페와 펜션을 좀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돈 많고, 암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하더니...주변 건물들이 전부 다 특색을 가지고 있더군요.  명달리숲속학교를 터전 삼아 후진양성에 힘쓰고 싶은 이유는 그동안 받았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맺어진 저의 모습 때문입니다. 

 

사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행사를 진행할 때 일처리가 느린 것을 못 참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일처리를 빨리 해 버리고, 결과를 기다리곤 합니다. 또한 즉석에서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데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못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타인을 향해 희생적으로 일을 잘 해 주고도 욕을 먹는다는 소리를 듣곤합니다. 

 

그런데 교육,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이 아니고 그 사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생각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여정길에서 오직 하나...저와 같은 생각으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공동체입니다. 

 

그것을 명달리숲속학교에서 이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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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신 (李濟臣)

 

1536(중종 31)~1583(선조 1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 자는 몽응 호는 청강, 시보의 중소으로 할아버지는 공달이고, 아버지는 병마사 문서이며, 어머니는 부령도호부사 우예손의 딸이다. 영의정 상진의 손자사위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해 7세 때부터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조식이 한번 보고서 기이하게 여겼다 한다. 17세 때 용문산으로 조욱을 찾아가 학업을 닦고, 1558년(명종 13)생원시에 합격, 이어서 1564년(명종 19)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권지정자에 보임되었다. 이어서 예문관검열.성균관전적. 형도정랑. 공조정랑. 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선조가 즉위해서는 예조정랑으로서 [명조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오상상이 신망해 사은사의 종사관으로 선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71년(선조4) 울산군수로 나가 아전들의 탐학을 근절시키고, 백성들의 불편을 없애는 데 힘썼다. 1578년 진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펴서 공이 많았는데, 이 때 토호들의 모함으로 병부를 잃고 벼슬을 사임, 향리에 은거하였다. 1581년 강계부사로 다시 등용되고, 이어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1584년 여진족 이탕개가 쳐들어와 경원부가 함락되자, 패전의 책임으로 의주 인산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는 행서.초서.전서.예서에 모두 뛰어났다. 1585년 경연관 이우직의 특청으로 신원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청백리에 책록되었다. 양근의 미원서원, 청주의 송천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평간이다. 저서와 작품으로는 [청강집], [청강소설], [진성잡기], [상붕남묘비], [이현령인손묘갈] 등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청강 이제신은 조선의 청백리로 기록되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淸白吏 (청백리)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에게 의정부에서 내리는 칭호입니다. 관리로서 청백리의 호칭을 받는 것은 대단히 큰 영예로 간주되었으며 후손들에게도 그 은덕으로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습니다. 다만 실제로 이 특전을 사용해서 관직에 오른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관직에 뜻이 있다면 저런 영광된 자손이라도, 아니 영광된 조상님 얼굴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과거 시험을 공부해서 관직에 나갔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 약 200명이 청백리 호칭을 수여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위키에서)

 

 

청강 이제신 기념관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아침 일찍 여명이 동터오는 시간대의 방문을 이상히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뚫고 한걸음 한걸음 묘소앞을 향해 걸어갑니다. 기념관 안쪽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다음기회에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표지판에 쓰여있던 청강 이제신 기념관의 궁금증을 풀고 갑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청백리 칭호를 받은 이제신 선생처럼 명달리숲속학교에서 시작될 가배커피체험학교(가칭)는 후진 양성을 알리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3개월동안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다녀오는 이유는 덜 성숙된 제 인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고은선생의 시로 제 마음을 대신합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 29권에서 이 청백리를 다룬 시

제목은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 이름인 '기건'.

 

 

조선 5백년간

청백리 2백이라면

그중에는 억지 고과(考課)도 더러 있겠으나

조선 몇백년간 2백이라면

그 얼마나

썩은 관(官)이게는가

썩고 썩은 이(吏)이겠는가

 

그런 탐관오리 구더기 세월 속

지독한 청백리도 암암리 있었거니와

청백리 기건 나리도

있었거니와

 

연안부사 재임 6년

그곳 명품

붕어

참붕어 한마리도 먹지 않았어

 

바다 건너

제주목사 재임 3년

그곳 명품

복어

도미 한점

입에 대지 않았어

 

그런즉 제주목 아전들

그 아래

대정현감

정의현감

죽을 판이었어

이런 관리가 희한하게 있어주었어

 

가을바람 일어

대정 백성 땀투성이 앙가슴 식어 살 만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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